미국학교의 1년 수업일은 180일인데 그중 열흘은 병가로 이틀은 개인적인 사정상 긴급상황이 생길 때 휴가로 쓸 수 있다. 만일 12일의 휴가를 다 쓰지 않은 해가 있다면 은퇴할 때 그에 해당하는 일당을 지급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늘 긴급상황이 생기거나 남편의 일 때문에 늘 12일의 휴가를 꼬박 채워 다 썼다. 그때부터 나는 운동화를 신고 뛰면서 살았는데 그것이 습관이 됐는지 지금도 굽 있는 신발을 신으면 불편하다. 게다가 늘 한 보 앞에서 남편을 안내하야 하니 안전이 제일이라고 생각해 나의 모든 신발에는 굽이 없다.

교사가 되었을 때 내가 맡은 일은 일반학교에서 수업을 받게 된 세 살부터 스물한 살까지의 학생들을 찾아다니면서 개별 지도를 하는 순회교사직이었다. 아예 시각을 잃어 교실에서 학업수행이 힘든 3세 아이부터 초등학생까지는 시작 외의 다른 감각기관을 개발하기 위한 수업을 해줬다. 특히 세 살부터 다섯 살까지의 아이 중 형편이 어려워 부모가 유아원에 보내지 못하는 경우는 아이의 발달이 늦어지기 때문에 국가에서 공립학교특별법을 제정해 무상교육을 해주었다.
이 시기에는 다섯 개의 감각기관을 통해 모든 사물에 대해 배우는데 가장 중요한 시각이 없으니 청각, 촉각, 후각, 방향감각 등을 계발해주는 교육과정을 짜야 했다. 하지만 내가 맡은 학생들은 시각이 없거나 약시라는 것 외에 전혀 공통점이 없었다. 다시 말해 완전히 개개인의 특수성과 능력에 맞게 개인지도를 해야했다. 정말 자식을 기르는 심정으로 정성껏 지도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도 선생님에게 감사를 표하는 날이 정해져 있는데, 내가 가르친 한 학생의 어머니는 매년 작은 인형이나 “#1 Teacher”라고 쓴 컵을 주어 지금까지도 그것을 보관하고 있다.

지도학생 중에는 중복장애아동도 있었고 정신지체아동도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직접 데리고 다니며 교내에서 식당, 화장실, 체육관에 가는 법과 학교 바깥에 있는 시설을 이용하는 법 등을 가르쳤다. 특히 체육관에서는 소리나는 공을 사용해 소리를 듣고 따라가서 공 잡아오기, 공 던지고 차기, 기어오르기, 줄넘기, 잡아당기기 등을 지도했다.

점자를 배우기 위해 촉각을 발달시켜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거칠고 뻣뻣한 재료부터 부드러운 촉감의 재료까지 다양한 재료로 사물을 만들어 그것의 이름과 느낌, 형태를 가르쳤고, 크고 작은 물건, 무겁고 가벼운 물건, 뜨겁고 찬 물건 등을 일일이 직접 만져보게 했다. 청각 계발을 위해서는 동물소리, 가정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소리, 다른 악기소리, 교통수단에서 나는 소리 등을 듣게 하고 자신의 목소리도 녹음해서 들려주면서 익히도록 했다. 직접 책을 읽어주거나 도서관에서 오디오북을 빌려와 들려주면서 청각을 발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내 임무 중 하나는 중고등학교 시각장애학생들에게 지팡이 사용법을 개인 지도하는 것이었다. 교내나 운동장, 교외에서 길을 건너는 법, 겨울철에 인도와 차도의 눈길을 구분해 안전하게 인도로 올라오는 법, 일반버스를 이용하는 법, 식당사용법, 간이 식품점과 도서관 찾아가는 법 등을 그들에게 일러주었고, 대학진학이 예정된 학생에게는 해당 학교를 미리 함께 가서 구석구석 안내해주고 학교에 설치된 시설의 이용법을 일일이 지도해주었다.

시각장애인에게 방향감각은 아주 중요하다. 가정이나 학교, 어느 공공기관이든 그들이 독립적으로 지팡이를 사용하거나 안내견의 도움을 받아 일반사회에 통합되어 사회인으로 떳떳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때문에 나는 음식을 담은 접시 여러 개를 식탁 위에 놓고 그것을 활용해 12시 방향, 6시 방향, 9시 방향 등을 구분해 가르쳤다. “물은 1시 방향에 있단다”라는 식으로 음식의 위치를 알려준 것이다.

사실 이런 모든 교육이 남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한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8년 펜실베이니아 주 정부에서 보행지도교사 자격증을 받은 후 가장 먼저 도운 사람이 바로 남편, 당시에는 나와 친하게 지냈던 맹인 동생이었기 때문이다.
결혼 전 미국 유학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그가 쓸 흰 지팡이를 선물로 사와서 연세대의 백양로, 교내 등에서 사용법을 지도해주었다. 결혼한 후에는 이사를 할 때마다 그가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기 위해 애썼다. 방바닥에는 특수 카펫을 깔아 그것을 따라가면서 식당과 부엌을 찾기 쉽게 했고, 냉장고 안에는 음식 넣어두는 곳을 알려주어 혼자서도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전자레인지 속에는 국과 밥, 반찬 등을 넣어 부득이 혼자 있을 때 버튼 하나만 눌러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게 했다.

이런 훈련을 꾸준히 한 결과, 이제 남편은 어느 맹인보다도 독립적으로 화장실이나 욕실, 거실, 서재 등을 오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전화 받기, 우체통에서 편지 가져오기, 혼자 아래층에 내려가 운동기계 사용하기, 아파트 앞에서 바깥 인도로 걸어 나간 다음 한 시간 동안 걷다 혼자 문을 찾아 들어오기는 물론 혼자 국내외 비행기 여향까지도 가능해졌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이제 동료 교사는 물론 학생과 학부모들에게까지 사랑으로 장애아동을 능력에 맞게 지도하는 교사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것은 내 교육법이 우수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동정이나 멸시의 대상이 아닌 존귀한 생명체로 인식하고 사랑을 베푸는 천성 때문이라고 믿는다. 피교육자가 사랑을 느낄 때 교육의 성과는 더욱 커진다. 
<다음호에 계속>